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천지(자연)는 인자하지 않아서(天地不仁, 以) 만물을(萬物)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기고(爲芻狗);
* 芻狗(추구): 짚으로 만든 개, 쓸데없이 되어 버린 물건(物件)의 비유(比喩ㆍ譬喩).
天地任自然, 無爲無造, 萬物自相治理, 故不仁也. 仁者必造立施化, 有恩有爲, 造立施化則物失其真, 有恩有爲, 列物不具存, 物不具存, 則不足以備載矣.
천지는(天地) 스스로 그러함에 맡기고(任自然), 하는 것도 없고(無爲) 만드는 것도 없고(無造), 만물이(萬物) 스스로(自) 서로(相) 다스리고(治理), 그러므로(故) 인자하지 않다(不仁也). 인이란(仁者) 반드시(必) 만들어 세우고(造立) 펼쳐서 변화시키는 것이니(施化), 은혜가 있고(有恩) 하는 것이 있고(有爲), 만들어 세우고(造立) 펼쳐서 변화시키면(施化則) 만물은(物) 그 참된 것을 잃고(失其真), 은혜가 있고(有恩) 하는 것이 있으면(有爲), 만물이(列物) 함께 보존될 수 없고(不具存), 만물이(物) 함께 보존될 수 없으면(不具存, 則) 갖추어 실어줄 수 없다(不足以備載矣).
* 王弼에 따르면 ‘無爲’란 무엇보다도 天地가 운행하면서 만물을 키우는 근원적인 방식을 형용하는 용어이다. 《노자주》에는 우주의 기원이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발생론적 언급은 없다. 단지 이 세계는 천지라는 주어진 세계로 존재할 뿐이며, 그것은 이미 본연의 질서[道]에 따라 운행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天]地不爲獸生芻, 而獸食芻; 不爲人生狗, 而人食狗. 無爲於萬物而萬物各適其所用, 則莫不贍矣. 若慧由己樹, 未足任也.
천지는([天]地) 짐승을 위해(爲獸) 꼴을 만들지 않지만(不生芻, 而) 짐승은 꼴을 먹고(獸食芻); 사람을 위해(爲人) 개를 만들 것은 아니지만(不生狗, 而) 사람은 개를 먹는다(人食狗). 만물에 대해서 무위하고(無爲於萬物而) 만물이(萬物) 각자(各) 그 쓰임에 알맞게 되면(適其所用, 則) 무엇도(莫) 넉넉하지 않은 것이 없다(不贍矣). 만약(若) 지혜가(慧) 자기로부터(由己) 세워진다면(樹), 맡기에 충분하지 않다(未足任也).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성인은(聖人) 인자하지 않아서(不仁, 以) 백성을(百姓)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爲芻狗).
聖人與天地合其德, 以百姓比芻狗也. 天地之間, 其猶橐籥乎?虛而不屈, 動而愈出.
성인이(聖人) 천지와 더불어(與天地) 그 덕에 부합하니(合其德, 以) 백성을(百姓) 짚으로 만든 개로 비유했다(比芻狗也).
* 聖人與天地合其德: 《周易》 乾卦 〈文言傳〉에서 따온 말이다.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천지의 사이는(天地之間), 아마도(其) 풀무나 피리 같지 않은가(猶橐籥乎)? 비었지만(虛而) 쭈그러들지 않고(不屈), 움직이지만(動而) 더욱 나온다(愈出).
橐, 排橐也. 籥, 樂籥也. 橐籥之中, 空洞無情無爲, 故虛而不得窮屈, 動而不可竭盡也. 天地之中, 蕩然任自然, 故不可得而窮, 猶若橐籥也.
탁은(橐), 풀무다(排橐也). 약은(籥), 피리다(樂籥也). 풀무와 피리의 가운데는(橐籥之中), 텅 비어서(空洞) 정이 없고(無情) 하는 것이 없고(無爲), 그러므로(故) 비었지만(虛而) 다해서 쭈그러듬이 없고(不得窮屈), 움직이지만(動而) 다할 수 없다(不可竭盡也). 천지의 가운데는(天地之中), 텅 비어서(蕩然) 스스로 그러함에 맡기고(任自然), 그러므로(故) 다할 수 없고(不可得而窮), 마치 풀무나 피리와 같다(猶若橐籥也).
* 蕩然(탕연): 헛된 모양(模樣), 자취 없이 된 모양(模樣).
多言數窮, 不如守中.(다언수궁 불여수중)
말이 많으면(多言) 수가 궁해지니(數窮), 중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不如守中).
* 多言數(삭)窮 不如守中: 帛書本에는 ‘多聞數窮 不若守於中’으로 되어 있다. 이석명은 多言이 언변의 유창함을 뜻하는 반면 多聞은 知와 관련된 것으로 《老子》 經3.4의 ‘無知無欲’처럼 知를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에 비추어볼 때 본래 《노자》는 ‘多言數窮’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淮南子》 〈道應訓〉은 이 부분을 王壽와 徐馮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지혜[知]란 때를 아는 것인데, 책에는 이러한 지혜가 담겨 있지 않다고 하면서 《노자》의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愈爲之則愈失之矣. 物樹其惡, 事錯其言, 不濟不言, 不理, 必窮之數也. 橐籥而守數中, 則無窮盡, 棄己任物, 則莫不理. 若橐籥有意於爲聲也, 則不足以共吹者之求也.
더욱 할수록(愈爲之則) 더욱 잃는다(愈失之矣). 만물에(物) 자기 악을 세우고(樹其惡), 일에(事) 자기 말을 섞어 놓으니(錯其言), 구제하지 않고(不濟) 말하지 않으면(不言), 다스려지지 않고(不理), 반드시(必) 궁한 일이(窮之) 있을 수순이다(數也). 풀무와 피리는(橐籥而) 중을 지킨다면(守數中, 則) 다하고 없어지지 않으니(無窮盡), 자기를 버리고(棄己) 만물에 맡기면(任物, 則) 무엇도(莫)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不理). 만약(若) 풀무와 피리에게(橐籥) 소리 내려는 뜻이 있다면(有意於爲聲也, 則) 부는 사람의 요구에(吹者之求) 이바지할 수 없다(不足以共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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