瞿鵲子問乎長梧子曰: (구작자문호장오자왈)
구작자가(瞿鵲子) 장오자에게 물어 말하길(問乎長梧子曰):
“吾聞諸夫子: 聖人不從事於務, 不就利, 不違害, 不喜求, 不緣道, 無謂有謂, 有謂無謂, 而游乎塵垢之外.夫子以爲孟浪之言, 而我以爲妙道之行也. 吾子以爲奚若?”
“내가(吾) 선생님께 들었는데(聞諸夫子): 성인은(聖人) 세속의 일에 종사하지 않고(不從事於務), 이익으로 나아가지 않고(不就利), 손해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不違害), 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不喜求), 도에 얽매이지 않고(不緣道), 말이 없지만(無謂) 말이 있고(有謂), 말이 있지만(有謂) 말이 없어서(無謂, 而) 세속의 바깥에서(乎塵垢之外) 노닌다(游). 선생님은(夫子) 이 말을(之言) 허망하다고 여겼지만(以爲孟浪, 而) 나는(我) 오묘한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妙道之行) 여겼다(以爲也). 그대는(吾子) 어찌 생각하는가(以爲奚若)?”라고 했다.
* 瞿鵲子(구작자): 인명. 까치처럼 경망하고 깜짝깜짝 놀라고 뛰어다니는 사람을 寓化‧創作한 가공의 인물.
* 長梧子(장오자): 인명. 큰 오동나무처럼 道를 깨달은 인물을 우화‧창작한 가공의 인물. 李頤는 커다란 오동나무 아래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호칭으로 삼았다고 했다. 崔譔은 長梧子의 이름이 丘라 했고, 簡文帝는 국경 관문지기[封人]라 했다.
* 塵垢(진구): 먼지와 때.
* 孟浪(맹랑): 1. 생각하던虛妄)함, 2. 처리(處理)하기가 매우 어렵고 딱함, 3. 만만이 볼 수 없을 만큼 똘똘하고 깜찍함.
* 奚若(해약): 여하(如何). 어찌.
長梧子曰: “是皇帝之所聽熒也, 而丘也何足以知之! 且女亦大早計, 見卵而求時夜, 見彈而求鴞炙. 予嘗爲女妄言之, 女以妄聽之.
장오자가 말하길(長梧子曰): “이것은(是) 황제도(皇帝之) 듣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데(所聽熒也, 而) 공가가(丘也) 어찌(何) 이것을 알 수 있겠는가(足以知之)! 또(且) 그대는 또한(女亦) 너무(大) 생각이 앞선 것이니(早計), 달걀을 보고(見卵而) 닭을 찾고(求時夜), 탄환을 보고(見彈而) 새 구이를 찾는 것이다(求鴞炙). 내가(予) 시험 삼아(嘗) 그대를 위해(爲女) 마구 말할 것이니(妄言之), 그대는(女) 마음대로(以妄) 들어보아라(聽之).
* 聽熒(청형), 細聾(세롱): 가는 귀가 먹어서 웬 만한 소리는 들리지 아니함.
* 早計(조계): 1. 아직 적당(適當)한 시기(時期)에 이르지 못한 계획(計劃), 2. 너무 이른 계획(計劃).
* 見卵而求時夜: 달걀을 보고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요구함. 時夜는 司夜로 밤을 담당한다는 뜻으로 닭[司夜之雞]을 지칭한다(崔譔).
奚旁日月, 挾宇宙, 爲其脗合, 置其滑湣, 以隷相尊? 衆人役役, 聖人愚鈍, 參萬歲而一成純. 萬物盡然, 而以是相蘊.
어찌(奚) 해와 달을 따르고(旁日月), 우주를 옆에 끼고(挾宇宙), 서로 꼭 맞는 입술이 되고(만물이 일체가 되고)(爲其脗合), 제멋대로 뒤섞인 것을 내버려 두고(置其滑湣), 노예 같은 사람으로도(以隷) 서로 존중하지 않는가(相尊)? 많은 사람이(衆人) 몸을 아끼지 않고 힘쓰지만(役役), 성인은 우둔해서(聖人愚鈍), 만 년을 섞어(參萬歲而) 하나의(一) 순수함을 이룬다(成純). 만물이(萬物) 모두 그러한데(盡然, 而) 이것으로(以是) 서로 감싼다(相蘊).
* 爲其脗合: 일체가 되기를 추구함. 곧 만물과 일체가 됨을 뜻한다. 脗合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꼭 맞는 것[兩脣之相合]’을 형용한 표현이다(向秀).
* 置其滑涽: 분명하게 알 수 없는 혼돈의 道에 자신을 머물게 한다는 뜻. 여기서 滑涽은 앞의 ‘滑疑之耀’와 같이 분명하게 알기 어려운 도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滑涽을 앞의 ‘樊然殽亂’과 같은 뜻으로 보고 세속의 어지러운 일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돌아보지 않는다고 풀이한 주석도 있다(郭象, 成玄英 등).
* 役役(역역): 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만 힘을 씀.
* 參萬歲而一成純: 參은 參糅로 뒤섞는다는 뜻. 곧 만년에 이르는 수많은 변화와 차별을 통일하여 純粹不雜의 세계, 萬物齊同의 세계를 이룩한다는 뜻이다.
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 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耶! 麗之姬, 艾封人之子也. 晉國之始得之也, 涕泣沾襟. 及其至於王所, 與王同筐床, 食芻豢, 而後悔其泣也. 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蘄生乎?
내가(予) 어찌(惡乎) 삶을 좋아하는 것이(說生之) 미혹되는 것이 아님을(非惑) 알겠는가(知邪)! 내가(予) 어찌(惡乎)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惡死之) 어려서 <고향을> 잃고(弱喪而) 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不知歸者) 아님을(非) 알겠는가(知耶)! 여희는(麗之姬), 애 땅(艾) 관문지기의 자식이었다(封人之子也). 진나라가(晉國之) 처음(始) 얻었는데(得之也), 눈물 흘리며 울고(涕泣) 옷섶을 적셨다(沾襟). 그가(其) 왕의 처소에 이르러서는(及至於王所), 왕과 함께(與王) 침상을 같이 쓰고(同筐床), 고기를 먹고 나서는(食芻豢, 而後) 그 운 것을 후회했다(悔其泣也). 내가(予) 어찌(惡乎) 저 죽은 사람이(夫死者) 그 처음에(其始之) 살기를 바란 것을(蘄生) 후회하지 않는지(不悔) 알겠는가(知乎)?
* 涕泣沾襟: 涕泣은 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뜻이고, 沾襟은 옷섶을 적신다는 뜻.
夢飮酒者, 旦而哭泣; 夢哭泣者, 旦而田獵. 方其夢也, 不知其夢也. 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 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 而愚者自以爲覺, 竊竊然知之.
꿈에(夢) 술을 마신 사람이(飮酒者), 아침에(旦而) 곡하며 울고(哭泣); 꿈에(夢) 곡하며 운 사람이(哭泣者), 아침에(旦而) 사냥을 나간다(田獵). 한창(方) 그가 꿈을 꿀 때는(其夢也), 그 꿈을 알지 못한다(不知其夢也). 꿈꾸는 중에는(夢之中) 또(又) 그 꿈을 점치기도 하고(占其夢焉), 깨어난 뒤에는(覺而後) 그것이 꿈이었던 것을 안다(知其夢也). 또(且) 큰 깨달음이 있고 나서야(有大覺而後) 이것이(此) 아주 큰 꿈이었음을(其大夢) 알고(知也, 而) 어리석은 자는(愚者) 스스로(自) 깨었다고 여기면서(以爲覺), 똑똑한 체하고(竊竊然) 지혜롭다고 여긴다(知之).
* 竊竊然知之: 司馬彪는 “竊竊은 察察과 같다[竊竊 猶察察].”라고 했다. ‘察察’은 세밀하게 따지는 모양으로 똑똑한 체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君乎! 牧乎!” 固哉! 丘也與女皆夢也, 予謂女夢亦夢也. 是其言也, 其名爲吊詭. 萬世之后而一遇大聖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
“임금이시여(君乎)! 하인들아(牧乎)!”라고 한다. 고루하구나(固哉)! 공자와(丘也與) 너는(女) 모두(皆) 꿈을 꾸고 있으니(夢也), 내가(予) 너의 꿈이라고 말한 것도(謂女夢) 또한(亦) 꿈이다(夢也). 이 말은(是其言也), 그 이름을(其名) 조궤라고 한다(爲吊詭). 만세의 두에(萬世之后而) 위대한 성인을(大聖知) 한 번이라도 만나(一遇) 그것을 풀 수 있다면(其解者), 이것은(是) 아침저녁으로(짧은 시간에)(旦暮) 만나는 것이다(遇之也).
* 君乎牧乎: ‘임금이시여’ 하고 ‘하인들아’ 하고 말함. 君과 牧은 각각 貴하고 賤한 사람(林希逸)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임금이시여’ 하고 자신이 천시하는 사람에게는 ‘하인들아’ 하고 거만을 떤다는 의미. 愛憎好惡의 偏見으로 차별의식을 갖는다는 뜻.
* 是其言也 其名爲弔(적)詭: 이 말은 그 명칭을 수수께끼라 한다. 弔詭는 지극히 이상한 말, 곧 보통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말이라는 뜻.
* 萬世之後 而一遇大聖 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 만 세대 뒤에 그 해답을 아는 큰 성인을 한 번 만난다 하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만나는 것과 같음. 곧 30만 년 뒤에 이 말을 이해할 줄 아는 성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만난 것처럼 행운이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