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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2-9] 잘잘못을 따지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변야자 유불견야(辯也者 有不見也)]

by चक्रम्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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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道未始有封, 言未始有常, 爲是而有畛也. (부도미시유봉 언미시유상 위시이유진야)

무릇(夫) 도에는(道) 애초에(始) 경계(구분)가 있지 않고(有封), 말에는(言) 애초에(始) 일정함(고정불변의 의미)이 있지 않고(有常), 이 때문에(爲是而) 구분이 생겼다(有畛也).

 

道未始有封: 도는 본시 이것저것의 구별이 없고 한 덩어리의 혼돈이었다는 뜻. 封(봉)은 구역이란 뜻으로 경계와 구분을 말한다. 

爲是而有畛也: 말 때문에 구별이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일정한 의미가 없는 말로 道를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사물에 구별‧대립‧차별 등이 있게 되었다는 뜻. 畛은 농토와 농토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 여기서는 앞의 封과 같이 구별‧대립‧차별 등의 뜻으로 쓰였다. 林希逸은 “至道와 至言은 본래 彼此의 구별이 없는데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구별이 있게 되었다[至道至言 本無彼此 因人心之私有箇是字 故生出許多疆界].”라고 하여 是를 지시대명사로 보지 않고 是非의 是로 보고 있다.

 

請言其畛: 有左有右, 有倫有義, 有分有辯, 有競有爭, 此之謂八德. 

청컨대(請) 그 구분을 말해보면(言其畛): 왼쪽이 있고(有左) 오른쪽이 있고(有右), 인륜이 있고 의리가 있고(有倫有義), 신분이 있고 우열이 있고(有分有辯), 경쟁이 있고 다툼이 있으니(有競有爭), 이것을(此之) 팔덕이라 한다(謂八德).

 

有倫有義: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차등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有分有辯: 사람과 사람을 지위에 따라 차별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合之外, 聖人存而不論; 六合之內, 聖人論而不議; 春秋經世先王之志, 聖人議而不辯. 故分也者, 有不分也; 辯也者, 有不辯也. 曰: “何也?” “聖人懷之, 衆人辯之以相示也. 故曰: 辯也者, 有不見也.”

이 세상(六合之) 바깥에 대해(外), 성인은 놓아두고(聖人存而) 언급하지 않고(不論); 이 세상의(六合之) 안에 대해서는(內), 성인이 언급하지만(聖人論而) 의논하지(시비를 따지지) 않고(不議); 춘추에서(春秋) 선왕이 경세한(經世先王之) 뜻에 대해서(志), 성인은 의논하지만(聖人議而) <공과를> 다지지 않는다(不辯). 그러므로(故) 나누려고 하는 것에는(分也者), 나눌 수 없는 것이 있고(有不分也); 따지려고 하는 것에는(辯也者), 따질 수 없는 것이 있다(有不辯也). 어째서인가(曰: “何也?)” “성인은(聖人) 그것을 가슴에 품고(懷之), 보통 사람은(衆人) 따져서(辯之以) 서로에게 보여준다(相示也).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따지는 사람은(辯也者),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有不見也).”라고 한다.

 

* 六合之外: 六合의 바깥. 〈應帝王〉편과 〈天運〉편의 ‘六極’과 같은 개념이다. 六合은 天地(上下)와 四方을 합친 개념(成玄英)으로 ‘六合之內’라고 하면 물리적인 공간 전체, 곧 이 세상을 의미하고, 六合之外는 이 세상 바깥, 곧 形而上의 세계, 不可知의 세계를 의미한다.

* 論而不議: 論하기만 하고 是非를 따지지 않음. 곧 다른 사람의 견해를 두고 옳다 그르다 하지 않음. 議는 物議의 議와 같이 어떤 일을 두고 시비를 따진다는 뜻으로 쓰였다.

* 春秋經世先王之志: 《춘추》에 나타난 선왕들이 經世한 기록. 春秋先王經世之志로 先王과 經世가 도치된 표현이다. 앞의 ‘大木百圍之竅穴’이 百圍大木之竅穴을 도치시켜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蔣錫昌). 志는 誌와 같고, 誌는 記載한다는 뜻(成玄英).

* 故分也者 有不分也: 〈사람들은〉 사물을 구분하지만 그중에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있음. 여기의 故는 앞에 원인을 나타내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결과를 표시하는 글자가 아니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때 쓰이는 상투적인 助詞로 보아야 한다(楊樹達, 《詞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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