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예는 설결의 질문에 세 번 모두 모르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내가 말하는 안다는 것이 정말로 아는 것인지, 내가 말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로 알지 못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덧붙인다. 안다는 것이 무지일지도 모르고 모르다는 것이 오히려 제대로 아는 것일지도 모르다는 왕예의 반문은 우리가 세상을 아는 대로만 보기에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齧缺問乎王倪曰: “子知物之所同是乎?” 曰: “吾惡乎知之!” “子知子之所不知耶?” 曰: “吾惡乎知之!” “然則物無知耶?” 曰: “吾惡乎知之!
설결이(齧缺) 왕예에게 물어 말하길(問乎王倪曰): “선생님은(子) 모든 존재가 옳다고 인정되는 것을(物之所同是) 아십니까(知乎)?” 말하기를(曰): “내가(吾) 어찌(惡乎) 그것을 알겠는가(知之)!” “선생님은(子) 선생님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子之所不知) 아십니까(知耶)?” 말하기를(曰): “내가(吾) 어찌(惡乎) 그것을 알겠는가(知之)!” “그렇다면(然則) 만물에 대해(物) 알 수 없을까요(無知耶)?” 말하기를(曰): “내가(吾) 어찌(惡乎) 그것을 알겠는가(知之)!
* 齧缺(설결): 가공의 인물이다. 〈天地〉편에는 ‘許由之師曰齧缺 齧缺之師曰王倪’라 하여 許由의 스승이고 王倪의 제자로 기록되어 있다.
* 王倪(왕예): 역시 가공의 인물이다. 〈天地〉편에는 ‘齧缺之師曰王倪 王倪之師曰被衣’라 하여 齧缺의 스승이고 被衣의 제자로 기록되어 있다.
* 物之所同是乎: 모든 존재[物]가 다 옳다고 인정되는 것. 곧 일체의 차별적 인식이 사라져 모든 존재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받는 萬物齊同의 세계를 표현한 말이다. 物之所同是는 《孟子》 〈告子 上〉의 ‘心之所同然’과 유사한 표현이다. 物之所同是를 ‘모든 物이 함께 옳다고 하는 바’라고 풀이하기도 하나 앞의 해석을 따랐다.
雖然, 嘗試言之: 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耶? 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耶? 且吾嘗試問乎汝: 民濕寢則腰疾偏死, 鰌然乎哉? 木處則惴慄恂懼猨, 猴然乎哉? 三者孰知正處?
그렇지만(雖然), 일단 시험해서(嘗試) 말해보면(言之): 내가(吾) 이른바(所謂) 안다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知之非不知) 어찌(庸詎) 알겠느냐(知耶? 내가(吾) 이른바所謂) 알지 못하는 것이(不知之) 아는 것이 아님을(非知) 어찌(庸詎) 알겠느냐(知耶)? 또(且) 내가(吾) 시험 삼아(嘗試) 너에게 물으니(問乎汝): 사람이(民) 습한 곳에서 자면(濕寢則) 허리병이 생기고(腰疾) 몸 한쪽이 마비되지만(偏死), 미꾸라지도(鰌) 그러한가(然乎哉)? 나무에 머물면(木處則) 두렵고 떨리지만(惴慄恂懼猨), 원숭이도(猴) 그러한가(然乎哉)? 이 셋 중에(三者) 누가(孰) 바른 거처를 아는가(知正處)?
* 嘗試言之: 시험 삼아 말해 봄. 嘗과 試는 모두 시험해 본다는 뜻이다.
* 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 내가 이른바 안다고 하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곧 무엇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뜻. 庸과 詎는 모두 ‘어찌’의 뜻.
* 民溼寢則腰疾偏死: 溼은 濕과 同字. 偏死는 몸의 한쪽이 마비되는 것을 말한다.
* 木處則惴慄恂懼: 惴‧慄‧恂‧懼는 모두 두려워하는 모양을 나타낸다.
民食芻豢, 麋鹿食薦, 蝍且甘帶, 鴟鴉耆鼠, 四者孰知正味? 猨猵狙以爲雌, 麋與鹿交, 鰌與魚游. 毛嬙麗姬, 人之所美也; 魚見之深入, 鳥見之高飛, 麋鹿見之決驟, 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自我觀之, 仁義之端, 是非之塗, 樊然淆亂, 吾惡能知其辯!”
사람이(民) 가축을 먹고(食芻豢), 고라니와 사슴이(麋鹿) 풀을 먹고(食薦), 지네가(蝍) 또(且) 뱀을 맛있게 먹고(甘帶), 솔개와 까마귀는(鴟鴉) 쥐를 좋아하니(耆鼠), 이 넷 중(四者) 누가(孰) 올바른 맛을 아는가(知正味)? 암컷 원숭이는(猨) 수컷 원숭이를(猵狙以) 짝으로 삼고(爲雌), 고라니는(麋) 사슴과 교미하고(與鹿交), 미꾸라지는(鰌) 물고기와 헤엄친다(與魚游). 모장과 여희는(毛嬙麗姬), 사람들이(人之) 아름답다고 하는데(所美也); 물고기가 보면(魚見之) 깊이 숨고(深入), 새가 보면(鳥見之) 높이 날아오르고(高飛), 고라니와 사슴이 보면(麋鹿見之) 힘껏 달아나니(決驟), 넷 중에(四者) 누가(孰) 천하의 올바른 아름다움을 아는가(知天下之正色哉)? 내가(自我) 보건대(觀之), 인의의 실마리와(仁義之端), 시비의 길은(是非之塗), 어수선하고(樊然) 혼란스러우니(淆亂), 내가(吾) 어찌(惡) 구 구별을 알 수 있겠는가(能知其辯)!”
* 芻豢(추환): 1. 풀을 먹는 소, 말, 양 등(等)과 곡식(穀食)을 먹는 개, 돼지 등(等)을 통틀어 이르는 말, 2. 가축(家畜)을 기르는 일, 3. 썩 잘 차린 음식(飮食)을 이르는 말.
* 猨猵狙以爲雌: 암컷원숭이를 수컷원숭이가 자신의 짝으로 여김. 猨과 猵狙는 모두 원숭이 종류이지만, 여기서는 맥락상 암컷원숭이가 猨이고 수컷원숭이가 猵狙이다.
* 淆亂(효란), 混亂(혼란): 1. 갈피를 2. 질서(秩序)가 없이 뒤얽힘.
齧缺曰: “子不利害, 則至人固不知利害乎?” 王倪曰: “至人神矣! 大澤焚而不能熱, 河漢沍而不能寒, 疾雷破山·飄風振海而不能驚. 若然者, 乘雲氣, 騎日月, 而游乎四海之外, 死生無變於己, 而况利害之端乎!”
설결이 말하길(齧缺曰): “선생님이(子) 이로움과 해로움을 알지 못한다면(不利害, 則) 지인이(至人) 본래(固) 이로움과 해로움을 알지 못하는지요(不知利害乎)?” 왕예가 말하길(王倪曰): “지인은 신이다(至人神矣)! 큰 늪이 불타도(大澤焚而) 뜨거워지지 않고(不能熱), 황하와 한수가 얼어도(河漢沍而) 추워지지 않고(不能寒), 날쌘 벼락이 산을 부수고(疾雷破山) 세찬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어도(飄風振海而) 놀라게 할 수 없다(不能驚). 만약(若) 이런 사람이라면(然者), 구름을 타고(乘雲氣), 해와 달을 몰아서(騎日月, 而) 사해 바깥에서 놀다가(游乎四海之外), 생사가(死生) 자기를 변하게 하지 못하는데(無變於己, 而) 하물며(况) 이해의 말단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利害之端乎)!”
* 至人(지인): 최고의 사람이란 뜻이다. 장자에서 완벽하고 흠 없는 이상적인 인물을 부르는 이름 중 하나다.
* 死生無變於己 而況利害之端乎: 죽음과 삶도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데 하물며 利害의 말단 따위이겠는가. 생사의 문제를 초월했기 때문에 이해의 말단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 端은 末端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