旣使我與若辯矣, 若勝我, 我不若勝, 若果是也? 我果非也耶? 我勝若, 若不吾勝, 我果是也? 而果非也耶? 其或是也? 其或非也耶? 其俱是也? 其俱非也耶? 我與若不能相知也. 則人固受其黮闇, 吾誰使正之?
만약(使) 니와 그대가(我與若) 논쟁을 하고 나서(旣辯矣), 그대가(若) 나를 이기고(勝我), 내가(我) 그대를 이기지 못하면(不若勝), 그대가(若) 과연 옳은 것인가(果是也)? 내가(我) 정말(果) 그른 것인가(非也耶)? 내가(我) 그대를 이기고(勝若), 그대가(若) 나를 이기지 못하면(不吾勝), 내가 과연 옳은 것인가(我果是也)? 그대는(而) 참으로 그른 것인가(果非也耶)?
* 旣使我與若辯矣: 가령 내가 그대와 논쟁했다면. 使는 가령의 뜻이고, 若은 2인칭이다.
其或是也? 其或非也耶? 其俱是也? 其俱非也耶? 我與若不能相知也. 則人固受其黮闇, 吾誰使正之?
그가(其) 혹시 옳은 것인가(或是也)? 그가(其) 혹시 그른 것인가(或非也耶)? 그들이(其) 모두 옳은 것인가(俱是也)? 그들이(其) 모두 그른 것인가(俱非也耶)? 나와 그대가(我與若) 서로 알지 못한다면(不能相知也. 則) 다른 삶이(人) 진실로(固) 그 어둠을 받아서(受其黮闇), 내가 누구에게(吾誰) 바로잡도록 하겠는가(使正之)?
* 人固受其黮闇(탐암): 다른 사람들이 참으로 어둠 속에 빠짐. 논쟁의 결과를 기다리는 제삼자는 더더욱 시비를 알 수 없게 된다는 뜻. 人은 他人을 지칭한다. 黮(어두울 탐), 闇(어두울 암)
使同乎若者正之, 旣與若同矣, 惡能正之? 使同乎我者正之, 旣同乎我矣, 惡能正之? 使異乎我與若者正之, 旣異乎我與若矣, 惡能正之? 使同乎我與若者正之, 旣同乎我與若矣, 惡能正之? 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 而待彼也耶?”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使同乎若者) 바로잡도록 한다면(正之), 이미(旣) 그대와 같은데(與若同矣), 어찌(惡)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能正之)?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使同乎我者) 바로잡도록 하면(正之), 이미(旣) 나와 같은데(同乎我矣), 어찌(惡)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能正之)? 나와 그대 모두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使異乎我與若者) 바로잡게 한다면(正之), 이미(旣) 나와 그대 모두와 다른데(異乎我與若矣), 어찌(惡) 바로잡을 수 있는가(能正之)? 나와 그대 모두와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使同乎我與若者) 바로잡게 하면(正之), 이미(旣) 나와 그대 모두와 같은데(同乎我與若矣), 어찌(惡) 바로잡을 수 있는가(能正之)? 그렇다면(然則) 나와 그대와 다른 사람 모두와(我與若與人俱) 서로 알 수 없으니(不能相知也, 而)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가(待彼也耶)?”
化聲之相待, 若其不相待, 和之以天倪, 因之以曼衍, 所以窮年也. “何謂和之以天倪?” 曰: “是不是, 然不然. 是若果是也, 則是之異乎不是也亦無辯;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 忘年忘義, 振於無竟, 故寓諸無竟.”
변화하는 소리는(시비를 따지는 것은))化聲之) 상대적이고(相待), 만약(若) 그것이(其) 상대적이지 않도록 하려면(不相待), 천예로(以天倪) 조화를 이루게 하고(和之), 만연으로(以曼衍) 따르게 하는 것이(因之), 받은 수명을 다하는 방법이다(所以窮年也). “무엇을(何) 화지이천예라 하는가(謂和之以天倪)?” 말하기를(曰):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여기고(是不是), 그렇하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여겨라(然不然). 옳은 것이(是) 만약(若) 정말 옳다면(果是也, 則) 옳은 것이(是之) 옳지 않은 것과 다름이(異乎不是也) 또한(亦) 따질 것도 없이 분명하고(無辯); 그렇다고 한 것이(然) 만약 정말 그렇다면(若果然也, 則) 그러한 것이(然之) 그렇지 않은 것과 다른 것도(異乎不然也) 또한(亦) 따질 것도 없이 분명하다(無辯). 나이를 잊고(忘年) 편견을 잊고(忘義), 경계 없는 경지에서 움직이고(振於無竟), 그러므로(故) 경계 없는 경지에 맡겨둔다(寓諸無竟).”라고 했다.
* 化聲之相待 若其不相待 : 시비를 따지는 소리에 의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의지하지 않는 것과 같음. 化聲은 시비를 따지는 것, 곧 논쟁을 의미한다. 변화하기 쉬운 是非의 소리라는 뜻도 된다.
* 和之以天倪(예): 天倪(자연의 道)로 조화함. 天倪는 자연의 道를 뜻하며 道에 의한 구분, 곧 절대적 규정을 의미한다. 郭象은 “天倪란 自然의 分이다[天倪者 自然之分也].”라고 했다.
* 因之以曼衍: 변화에 자기 자신을 맡김. 曼衍은 變化와 같고 因은 맡긴다는 뜻이다(成玄英).
* 是不是 然不然: 是와 不是, 然과 不然으로 끊어서 보는 견해도 있고, 是가 곧 不是이고 然이 곧 不然이라고 보는 讀法도 있지만, 여기서는 〈天地〉편과 〈秋水〉편의 ‘可不可 然不然’에 근거하여 是不是에서 앞의 是와, 然不然에서 앞의 然을 술어(동사)로 보고 ‘세속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세속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여기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 無辯은 따질 필요도 없이 분명하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