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養生)에 관한 사상은 도가(道家)가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양생養生’은 생을 기른다는 뜻으로, 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횡사하지 않고 주어진 생명을 보존하여 타고난 수명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養生主의 ‘主’는 근본, 중심이란 뜻이다. 편명인 '양생주養生主'는 ‘養生을 근본적인 것[主]으로 삼는 것’, 또는 ‘養生의 근본적인 道’, ‘양생의 중심’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제1장은 총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양생의 요체를 설명하고 있다. 일체의 선악과 시비를 無化시키는 中의 경지에 따르는 것[緣督]을 삶의 근본원리[經]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내 삶에는(吾生也) 한계가 있지만(有涯, 而) 지식에는(知也) 한계가 없다(無涯).
* 涯(애): 물가. 여기서는 끝, 한계라는 뜻으로 쓰였다.
以有涯隨無涯, 殆已! (이유애수무애 위이)
끝이 있는 것으로(以有涯) 끝이 없는 것을 따라가는 것은(隨無涯), 위태로울 뿐이다(殆已)!
* 殆已를 지칠 뿐이라고도 볼 수 있다. 韓元震은 “유한한 삶으로 무한한 지식을 추구하면 정신이 안에서 피폐해지고 재앙이 밖에서 이른다. 지식은 몸을 위태롭게 하는 도리이고 삶을 기르는 방도가 아니다. 그 때문에 위태로울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以有限之生 役於無限之知 則精神內弊 患害外至 知者 卽危身之道 而非養生之方 故曰殆已].”라고 풀이했다.
已而爲知者, 殆而已矣! (이이위지자 위이이의)
그런데도(已而)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爲知者), 위태로울 뿐이다(殆而已矣)!
* 已而: 이미 그런데도. 已然而와 같다.
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 可以保身, 可以全生, 可以養親, 可以盡年. (위선무근명 위악무근형 연독이위경 가이보신 가이전생 가이양친 가이진년)
선을 행하지만(爲善) 명성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고(無近名), 악을 행하더라도(爲惡) 형벌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고(無近刑), 중을 따르는 것을(緣督以) 삶의 원칙으로 삼으면(爲經), 몸을 보전할 수 있고(可以保身), 생명을 온전히 할 수 있고(可以全生), 부모를 봉양할 수 있고(可以養親), 천수를 누릴 수 있다(可以盡年).
* 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 얼핏 보면 선과 악을 적절하게 행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선을 행하지도 악을 저지르지도 말라는 뜻이다. 곧 선을 행하면 명예가 생기기 때문에 결국 그 명예로 인해 위태로워지고, 악을 저지르면 형벌로 처벌받기 때문에 결국 몸이 위태로워지므로 선도 악도 아닌 中의 입장을 택하여, 일체의 善惡과 是非를 떠나라는 뜻이다.
* 緣督以爲經: 緣督의 督은 中의 뜻(陸德明). 《靈樞》에 의하면 사람의 八脈 가운데 중앙의 맥을 督脈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中의 뜻으로 사용한 듯하다. 緣은 順‧循‧因으로 따른다는 뜻. 經은 삶의 근본원리, 근본법칙이다.
* 可以養親: 親을 身의 假借字로 보고 “몸을 잘 기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