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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장자(莊子) 외편(外篇) 천도(天道) 13-2] 만물지본(萬物之本) - 허와 정은 만물의 근본이다

by चक्रम् 202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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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虛靜恬淡寂漠無爲者, 天地之平而道德之至也.(부허정염담적막무위자 천지지평이도덕지지야) 故帝王聖人休焉.(고제왕성인휴언) 休則虛, 虛則實, 實則倫矣.(휴즉허 허즉실 실즉윤의) 虛則靜, 靜則動, 動則得矣.(허즉정 정즉동 동즉득의) 靜則無爲, 無爲也, 則任事者責矣.(정즉무위 무위야 즉임사자책의) 無爲則兪兪. 兪兪者, 憂患不能處, 年壽長矣.(무위즉유유 유유자 우환불능처 연수장의) 夫虛靜恬淡寂漠無爲者, 萬物之本也.(부허정담염적막무위자 만물지본야) 明此以南鄕, 堯之爲君也;(명차이남향 요지위군야) 明此以北面, 舜之爲臣也.(명차이북면 순지위신야) 以此處上, 帝王天子之德也;(이차처상 제왕천자지덕야) 以此處下, 玄聖素王之道也.(이차처하 현성소왕지도야) 以此退居而閑游, 江海山林之士服;(이차퇴거이한유 강해산림지사복) 以此進爲而撫世, 則功大名顯而天下一也.(이차진위이무세 즉공대명현이천하일야) 靜而聖, 動而王, 無爲也而尊, 朴素而天下莫能與之爭美.(정이성 동이왕 무위야이존 박소이천하막능여지쟁미)

무릇(夫) 비고 고요하며(虛靜) 욕심 없고 깨끗한 것과(恬淡) 적막하면서 하는 일이 없는 것은(寂漠無爲者), 천지의 표준이며(天地之平而) 도덕의 지극함이다(道德之至也). 그러므로(故) 제왕과 성인이(帝王聖人) 거기에서 쉰다(休焉).

쉬면 비고(休則虛), 비면 차고(虛則實), 차면 갖춰진다(實則倫矣). 비면 고요하고(虛則靜), 고요하면 움직이고(靜則動), 움직이면 얻는다(動則得矣). 고요하면 하는 일이 없고(靜則無爲), 하는 일이 없으면(無爲也, 則) 일을 맡은 사람이(任事者) 책임을 다한다(責矣).

하는 일이 없으면(無爲則) 즐겁다(兪兪). 즐거운 사람은(兪兪者), 근심과 걱정이(憂患) 머물 수 없고(不能處), 수명이 길어진다(年壽長矣). 무릇(夫) 비고 고요하며(虛靜) 욕심 없고 깨끗한 것과(恬淡) 적막하면서 하는 일이 없는 것은(寂漠無爲者), 만물의 근본이다(萬物之本也).

이것을 밝혀서(明此以) 남쪽을 바라본 것이(南鄕), 요가(堯之) 임금 노릇한 것이고(爲君也); 이것을 밝혀서 북쪽을 바라본 것이(明此以北面), 순이 신하 노릇한 것이다(舜之爲臣也). 이것으로(以此) 윗자리에 처하는 것이(處上), 제왕과 천자의 덕이고(帝王天子之德也); 이것으로 아랫자리에 처하는 것이(以此處下), 현성과 소왕의 도다(玄聖素王之道也). 이것으로(以此) 물러나(退居而) 한가로이 노닐면(閑游), 강과 바다(江海) 산림의 선비가(山林之士) 복종하고(服); 이것으로(以此) 나아가(進爲而) 세상을 어루만지면(撫世, 則) 공과 큰 이름이(功大名) 드러나(顯而) 천하가 하나될 것이다(天下一也).

고요하면 성인이고(靜而聖), 움직이면 제왕이고(動而王), 하는 일 없으면 존중받고(無爲也而尊), 소박하면(朴素而) 천하의 누구도(天下莫) 그와 더불어(能與之) 아름다움을 다툴 수 없다(爭美). 

 

* 恬淡(담염):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

* 天地之平: 馬叙倫은 “살펴보건대 平字는 〈刻意〉편에는 本자로 표기되어 있다. 요즘의 판본에는 잘못 平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마땅히 〈刻意〉편을 따라야 할 것이다. 하문에 ‘夫虛靜恬寂漠無爲者 萬物之本也’라고 된 것이 그 증거이다. 平자와 本자는 글자의 모양과 발음이 비슷해서 잘못 전해진 것이다[案平刻意篇作本 今本誤作平當從之 下文曰 夫虛靜恬寂漠無爲者 萬物之本也 是其證 平本形聲相近而譌].”라고 했고 陳鼓應도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하지만 池田知久의 주장처럼 앞장의 ‘平中准(準)’을 이어서 말한 것(焦竑)이므로 平자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 實者倫矣: 奚侗은 “요즘 판본에는 備자가 倫자로 표기되어 있고 《莊子闕誤》에서 인용한 江南 古藏本에는 倫자가 備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備자로 보는 것이 의미상 더 좋다[備今本作倫 闕誤引江南古藏本倫作備 於義爲長].”라고 풀이했다. 또 劉文典은 “ ‘實者備矣’는 아래의 ‘動則得矣’와 협운이다. 備자가 모양이 비슷해서 倫자로 와전되었다[實者備矣 與下動則得矣爲韻 備以形近譌爲倫].”라고 풀이했다. 

* 兪兪: 愉愉와 같다. 陸德明은 《廣雅》를 인용하여 기뻐하는 모습[喜]으로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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