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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장자(莊子) 외편(外篇) 천지(天地) 12-14] 아첨하고 아부하지 않는 것

by चक्रम् 2024.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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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子不諛其親, 忠臣不諂其君, 臣·子之盛也.(효자불유기친 충신불아기군 신자지성야) 親之所言而然, 所行而善, 則世俗謂之不肖子;(친지소언이연 소행이선 즉세속위지불초자) 君之所言而然, 所行而善, 則世俗謂之不肖臣.(군지소언이연 소행이선 즉세속위지불초신) 而未知此其必然耶?(이미지차기필연야)

효자는(孝子) 그 부모에게(其親) 아첨하지 않고(不諛), 충신이(忠臣) 그 임금에게 아첨하지 않는 것이(不諂其君), 신하와 자식이(臣·子之) 두터운 것이다(盛也). 부모가(親之) 말한 것이면(所言而) 그렇다고 하고(然), 행한 것이면(所行而) 좋다고 하면(善, 則) 세속에서(世俗) 그를 불초자라 하고(謂之不肖子); 임금이 말한 것이면(君之所言而) 그렇다고 하고(然), 행한 것이면 좋다고 여긴다면(所行而善, 則) 세상 사람들이(世俗) 그를 불초한 신하라고 한다(謂之不肖臣). 그러나(而) 그것이 반드시 그러한 지를(此其必然) 알지 못하겠다(未知耶)? 

 

* 孝子不諛其親 忠臣不諂其君: 諛와 諂은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漁父〉편에 “다른 사람의 뜻을 살펴서 아첨하는 말을 하는 것을 諂이라 하고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말하는 것을 諛라 한다[希意道言謂之諂 不擇是非而言謂之諛].”라고 했다.

* 親之所言而然 所行而善 則世俗 謂之不肖子: 而 이하의 然이 술어 동사이고 而 앞의 親之所言이 목적어이다. 마찬가지로 所行而善의 所行은 목적어이고 善이 술어 동사이다. 이 같은 구문은 《孟子》 〈梁惠王 上〉의 “어찌 어진 사람이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들 그물질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焉有仁人在位 罔民而可爲也].”라고 한 데서 罔民이 목적어이고 可爲가 술어 동사로 활용된 경우에서도 찾을 수 있다.

 

世俗之所謂然而然之, 所謂善而善之, 則不謂之道諛之人也!(세속지소위연이연지 소위선이선지 즉불위지도유지인야) 然則俗故嚴於親而尊於君耶?(연즉속고엄어친이존어군야) 謂己道人, 則勃然作色; 謂己諛人, 則怫然作色. 而終身道人也, 終身諛人也, 合譬飾辭聚衆也, 是終始本末不相坐. 

세속이(世俗之) 이른바(所謂) 그렇다고 하면(然而) 그렇다고 여기고(然之), 이른바 아름답다고 하면(所謂善而) 아름답게 여긴다면(善之, 則) 그를 아첨하는 사람이라고(之道諛之人) 말하지 않는다(不謂也)! 그렇다면(然則) 세속이(俗) 참으로(故) 어버이보다 엄하고(嚴於親而) 군주보다 존귀한 것인가(尊於君耶)? 자기를 아첨꾼이라고 말하면(謂己道人, 則) 발끈하고(勃然) 얼굴빛을 고치고(作色); 자기를 아부꾼이라고 말하면(謂己諛人, 則) 발끈하며 얼굴빛을 고친다(怫然作色). 그러나(而) 종신토록(終身) 아첨꾼 노릇하고(道人也), 종신토록(終身) 아부꾼 노릇하며(諛人也), 비유를 쓰고(合譬) 말을 꾸며서(飾辭) 사람을 모으는 것은(聚衆也), 이것은(是) 시작과 끝(終始), 근본과 말단이(本末)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不相坐). 

 

* 謂己道人 則勃然作色 謂己諛人 則怫然作色: 勃然과 怫然은 모두 발끈하고 성을 내는 모양이다. 勃然을 벌떡 일어나는 모양으로 보는 견해(王念孫, 王叔岷 등)가 있으나 作色이라는 구체적인 설명이 바로 이어져 있으므로 발끈하는 얼굴 표정과 달리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여기서도 역시 道人은 ‘아첨꾼’이다.

* 合譬 飾辭 聚衆也: 合譬는 비유를 이리저리 갖다 붙여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함. 飾辭는 말을 화려하게 꾸며서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행위를 말한다. 聚衆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견해에 동조하도록 함이다.

 

垂衣裳, 設釆色, 動容貌, 以媚一世, 而不自謂道諛;(수의상 설변색 동용모 이미일세 이부자위도유) 與夫人之爲徒, 通是非, 而不自謂衆人也, 愚之至也.(여부인지위도 통시비 이부자위중인야 우지지야) 知其愚者, 非大愚也;(지기우자 비대우야) 知其惑者, 非惑也.(지기혹자 비대혹야) 大惑者, 終身不解;(대혹자 종신불해) 大愚者, 終身不靈. (대우자 종신불령) 三人行而一人惑, 所適者, 猶可致也, 惑者少也;(삼인행이일인혹 소적자 유가치야 혹자소야) 二人惑則勞而不至, 惑者勝也.(이인혹즉노이부지 혹자승야) 而今也以天下惑, 予雖有祈向, 不可得也. 不亦悲乎! 

의상을 드리우고(垂衣裳), 분별 있는 얼굴을 하고(設釆色), 용모를 꾸며서(動容貌, 以) 한 세상에 아첨하면서(媚一世, 而) 스스로 아첨한다고 말하지 않고(不自謂道諛); 세속 사람들과 더불어(與夫人之) 무리가 되어(爲徒), 옳고 그름을 통하게 하고(通是非, 而) 스스로 무리 짓는 사람이 이라고 말하지 않으면(不自謂衆人也), 어리석음이(愚之) 지극한 것이다(至也). 그 어리석음을 아는 사람은(知其愚者), 크게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非大愚也); 그 미혹을 아는 사람은(知其惑者), 크게 미혹된 것이 아니다(非惑也). 크게 미혹한 사람은(大惑者), 종신토록 풀지 못하고(終身不解); 크게 어리석은 사람은(大愚者), 종신토록 깨닫지 못한다(終身不靈). 세 사람이(三人) 길을 가면서(行而) 한 사람이 미혹하면(一人惑), 가려는 곳에(所適者), 오히려(猶) 이를 수 있고(可致也), 미혹한 사람이(惑者) 적기 때문이며(少也); 두 사람이 미혹하면(二人惑則) 노력해도(勞而) 이르지 못하니(不至), 미혹한 사람이 많아서이다(惑者勝也). 그러나(而) 지금(今也) 천하가 미혹했기 때문에(以天下惑), 나에게 비록(予雖) 빌고 바라는 것이 있더라도(有祈向), 얻을 수 없다(不可得也). 또한 슬프지 않은가(不亦悲乎)! 

 

* 大惑者 終身不解 大愚者 終身不靈: 解와 靈은 모두 깨우침이다. 司馬彪는 “靈은 깨우침이다[靈 曉也].”라고 풀이했다.

* 惑者 勝也: 勝은 수가 많기 때문에 이긴다는 뜻으로 勝자가 多자로 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大聲不入於里耳, 折楊·皇荂, 則嗑然而笑. 是故高言不止於衆人之心; 至言不出, 俗言勝也. 以二缶鍾惑, 而所適不得矣. 而今也以天下惑, 予雖有祈向, 其庸可得邪! 知其不可得也而强之, 又一惑也! 故莫若釋之而不推. 不推, 誰其比憂! 厲之人, 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唯恐其似己也.

훌륭한 음악은(大聲) 마을 사람들 귀에(於里耳) 들리지 않지만(不入), 절양과 황과는(折楊·皇荂, 則) 소리 지르며(嗑然而) 웃는다(笑). 이 때문에(是故) 훌륭한 말은(高言) 사람들 마음에(於衆人之心) 머물지 않고(不止); 지극한 말이(至言) 나오지 않는 것은(不出), 속된 말이(俗言) 많아서이다(勝也). 두 사람이(以二) 발을 내디뎌 미혹에 빠지면(缶鍾惑, 而) 가려는 곳에(所適) 갈 수 없다(不得矣). 그러나(而) 지금(今也) 천하사람들이 미혹했으니(以天下惑), 나에게 비록(予雖) 바라는 것이 있어도(有祈向), 그 어찌(其庸) 얻겠는가(可得邪)! 그 얻을 수 없을 알면서도(知其不可得也而) 억지로 하면(强之), 또한(又) 미혹의 하나일 것이다(一惑也)! 그러므로(故) 놓아두고(釋之而) 미루어 나가지 않는 것만(不推) 못하다(莫若). 미루어 나가지 않으면(不推), 누가(誰) 그 견주어(其比) 걱정하겠는가(憂)! 나병 환자가(厲之人), 한밤중에(夜半) 자식을 낳고(生其子), 급히(遽) 불을 취해서(取火而) 보며(視之), 불안스럽게(汲汲然) 오직(唯) 그가 자기를 닮았을까(其似己) 걱정한다(也).

 

* 折楊皇荂 則嗑然而笑: 折楊과 皇荂는 모두 옛 歌曲(李頤).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속의 음악을 대표하는 악곡 명칭이다.

* 以二垂踵惑 而所適不得矣: 垂踵은 원문에는 缶鍾으로 되어 있으나 《經典釋文》에 의거, 垂踵으로 고쳐 읽어야 한다. 垂踵은 발을 들어 옮기다는 뜻이니 二垂踵惑은 두 사람이 발을 잘못 놓는 것을 말한다.

* 厲之人 夜半 生其子: 厲(라)는 癩(라)이고 두 글자 모두 本音은 뢰이며, 厲之人은 나병 환자(王先謙)다. 夜半은 夜之半. 곧 한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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