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자(莊子)

[장자(莊子) 외편(外篇) 천지(天地) 12-10] 교화되어도 백성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by चक्रम् 2024. 12. 6.
반응형

蔣閭葂見季徹曰:(장려면견계철왈) “魯君謂葂也曰: ‘請受敎.’ 辭不獲命.(노군위면야왈 청수교 사불획명) 旣已告矣, 未知中否. 請嘗薦之.(기이고의 미지중부 청상천지) 吾謂魯君曰: ‘必服恭儉, 拔出公忠之屬而無阿私, 民孰敢不輯!’”(오위노군왈 필복공검 발출공충지속이무아사 민숙감부집)

장려면이(蔣閭葂) 계철을 만나 말하길(見季徹曰): “노군이(魯君) 면에게 말한 것이(謂葂也曰): ‘청컨대(請)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受敎).’라고 하기에, 사양했지만(辭) 명(허락)을 받지 못했다(不獲命)라고 했다. 이미(旣已) 고했는데(告矣), 맞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겠으니(未知中否), 청컨대(請) 시험 삼아(嘗) 그것을 말해보려고 합니다(薦之)라고 했다.

내가(吾) 노군에게 말하길(謂魯君曰): ‘반드시(必) 몸소(服) 공경하고 절약하고(恭儉), 공평하고 충직한 부류를(公忠之屬) 발탁해서 등용하고(拔出而) 사사로운 사람을 아끼지 않으면(無阿私), 백성 가운데 누가(民孰) 감히(敢) 모이지 않겠습니까(不輯)!’”라고 했다. 

 

* 辭不獲命(사불획명): 사퇴(退)했으나 허락()을 얻지 못함.

* 未知中否: 中은 的中의 뜻으로 꼭 맞음을 뜻한다.

* 請嘗薦之: 林希逸은 薦을 陳으로 풀이하고 “말한 것을 진술하고자 함이다[請以所言陳之].”라 했고, 劉鳳苞는 “임금에게 말했던 것을 계철에게 질정받고자 함이다[欲以所言君者 就正于季徹].”라고 풀이했다.

* 必服恭儉: 服은 服行, 또는 躬行으로 몸소 실천한다는 뜻이다.

* 拔出公忠之屬 而無阿私: 阿는 비호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편애한다는 의미다. 私는 私所好之人으로 사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따라서 無阿私는 사사로이 좋아하는 사람을 편애하거나 비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季徹局局然笑曰:(이철국국연소왈) “若夫子之言, 於帝王之德, 猶螳螂之怒臂以當車軼, 則必不勝任矣!(약부자지언 어제왕지덕 유당랑지노비이당거철 즉필불승임의) 且若是, 則其自爲處危, 其觀台多物, 將往投迹者衆.”(차약시 즉기자위처위 기관태다물 장주투적자중) 蔣閭葂覤覤然驚曰: “葂也汒若於夫子之所言矣!(장려면극극연경왈 면야망약어부자지소언의) 雖然, 願先生之言其風也.”(수연 원선생지언기풍야)

이철이(季徹) 몸을 굽히고(局局然) 웃으며 말하길(笑曰): “만약(若) 그대의 말과 같다면(夫子之言), 제왕의 덕에 비하면(於帝王之德), 사마귀가(猶螳螂之) 화를 내며(怒) 팔을 들어(臂以) 수레바퀴에 대적하는 것이니(當車軼), 그렇다면(則) 반드시(必) 일을 감당할 수 없다(不勝任矣)! 또(且) 이와 같다면(若是, 則) 그것은(其) 스스로(自) 위엄에 처하게 하는 것이고(爲處危), 그(其) 많은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볼 것이고(觀台多物), 장차(將) 가서(往) 던져서(投) 자취를 쫓는 사람이(迹者) 많을 것이다(衆).”라고 했다.

장려면이(蔣閭葂) 크게 두려워하며(覤覤然) 놀라 말하길(驚曰): “제가(葂也) 선생님이 말한 것에(於夫子之所言矣) 어리둥절해졌습니다(汒若)! 비록 그렇지만(雖然), 원컨대(願) 선생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先生之言其風也).”

 

* 螳螂(당랑): 사마귀. 사마귓과의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 投迹者衆: 投迹은 賢者나 知者의 행동을 흉내 낸다는 뜻이다.

* 汒若於夫子之所言矣: 선생의 말에 어리둥절해짐. 곧 당신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는 뜻. 汒若은 어리둥절한 모양으로 茫然과 같다.

* 先生之言其風也: 成玄英은 “風은 가르침이다[風 敎也].”라고 하여 風敎의 뜻으로 보았으며 福永光司는 其風은 그가 信奉하는 道 즉 無爲自然의 道를 의미하며 《莊子》의 제일 마지막 〈天下〉편에 보이는 ‘聞其風而悅之’의 風과 같다고 보았다. 선생께서 道에 대해 말씀하심을 듣고 싶다, 곧 道에 대한 선생의 말씀을 듣고 싶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季徹曰: “大聖之治天下也, 搖蕩民心, 使之成敎易俗, 擧滅其賊心而皆進其獨志.(이철왈 대성지치천하야 요탕민심 사지성교역속 거멸기적심이개진기독지) 若性之自爲, 而民不知其所由然.(약성지자위 이민부지기소유연) 若然者, 豈兄堯·舜之敎民溟涬然弟之哉? 欲同乎德而心居矣!”(약연자 기형요순지교민명행연제지재 욕동호덕이심거의)

계철이 말하길(季徹曰): “큰 성인이(大聖之)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治天下也), 백성의 마음을 흔들고( 움직여搖蕩民心), 그들로 하여금(使之) 가르침을 이루고(成敎) 풍속을 바꾸도록 해서(易俗), 그 남을 해치는 마음을(其賊心) 모두 없애고(擧滅而) 그 스스로 만족하는 뜻으로(其獨志) 모두 나아가도록 한다(皆進). 본성의 스스로 그러함과 같이(若性之自爲, 而) 백성이(民)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不知其所由然).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若然者), 어찌(豈) 요순이 백성을 가르치는 것에 만족하고(兄堯·舜之敎民) 자연스럽게 그것과 같아지려 하겠는가(溟涬然弟之哉)? 욕심이(欲) 덕과 같아지면(同乎德而)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心居矣)!”라고 했다.

 

* 搖蕩(요탕): 흔들려 움직임. 동요()함.

* 若性之自爲: 自爲는 自然과 같다. 林雲銘은 若을 順으로 풀이했지만 이 부분은 백성들이 본성이 저절로 그러한 것처럼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는 맥락이기 때문에 若을 ‘같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타당하다.

* 豈兄堯舜之敎民 溟涬然弟之哉: 兄과 弟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설이 있다. 글자를 그대로 두고 兄을 ‘형으로 존경한다’는 뜻으로, 弟는 ‘아우로서 따른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郭象)가 있고, 兄을 比況의 況으로 보고 ‘비유하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孫詒讓) 등이 있지만, 陸德明의 기록을 따르면 元嘉본에는 兄이 足으로 되어 있다고 했으므로 兄을 足의 오자로 보고 弟는 夷의 오자로 보는 王叔岷의 견해가 타당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