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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장자(莊子) 외편(外篇) 천지(天地) 12-9] 망기지인(忘己之人) - 자기를 잊는 사람을 하늘에 들어갔다고 한다

by चक्रम् 2024.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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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子問於老聃曰:(부자문어노담왈) “有人治道若相放, 可不可, 然不然. 辯者有言曰: ‘離堅白, 若縣寓.’ 若是則可謂聖人乎?” 

선생(공자)이(夫子) 노담에게 묻기를(問於老聃曰): “도를 닦은 사람이 있어(有人治道) 만약(若) <세상의 상식과> 서로 어긋난다면(相放), 옳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하고(可不可),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합니다(然不然). 변론가들에게(辯者) 말이 있으니(有言曰): ‘단단한 것과 흰 것을 나누는 것이(離堅白), 마치(若) 집에 매단 것처럼 분명하다(縣寓).’라고 합니다. 이와 같다면(若是則)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可謂聖人乎)?”라고 했다.

 

* 有人治道: 도를 닦은 사람이 있음. 治道는 修道와 같다.

* 若相放{: 放은 어긋난다는 뜻으로 논쟁을 좋아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거스르는 것이다.

* 離堅白 若縣㝢: 離堅白은 ‘단단하고 흰 돌[堅白石]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주장하는 詭辯으로 〈齊物論〉, 〈德充符〉, 〈騈拇〉, 〈胠篋〉편 등에 이미 나왔다. 단단하다는 개념과 희다는 개념을 사물과 분리시켜서 이해함으로써 사물의 내적 연관을 부정한 논변이다. 若縣㝢의 㝢는 陸德明이 宇로 읽은 것이 적절하다. 司馬彪가 若縣㝢를 “변론의 명백함이 마치 집에 매달아 사람들 앞에 보여 주는 것과 같다[辯明白 若縣室在人也].”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老聃曰: “是胥易技系, 勞形怵心者也. 執之狗成思, 猿狙之便自山林來. 丘, 予告若, 而所不能聞與而所不能言: 凡有首有趾·無心無耳者衆; 有形者與無形無狀而皆存者盡無. 其動止也, 其死生也, 其廢起也, 此又非其所以也. 有治在人. 忘乎物, 忘乎天, 其名爲忘己. 忘己之人, 是之謂入於天.”

노담이 말하길(老聃曰): “이것은(是) 잡일을 다스리고(胥易) 잔재주에 얽매이는 것이니(技系), 몸을 수고롭게 하고(勞形) 마음을 졸이게 하는 것이다(怵心者也). 살쾡이 잡는 사냥개가(執之狗) 사냥에 동원되고(成思), 원숭이의 민첩함으로도(猿狙之便) 산림으로부터(自山林) 잡혀 온다(來). 구야(丘), 내가 너에게(予若), 네가(而) 들을 수 없는 것과(所不能聞與) 네가 말할 수 없는 것을(而所不能言) 일러줄 것이니(告): 무릇(凡) 머리가 있고 발이 있는데(有首有趾) 마음이 없고 귀가 없는 사람이(無心無耳者) 많고(衆); 형체를 가진 사람 가운데(有形者) 형체가 없고 형상이 없는 것과 더불어(與無形無狀而) 모두(皆) 보존하는 사람은(存者) 전혀 없다(盡無). 그 움직임과 그침(其動止也), 그 삶과 죽음(其死生也), 그 없어짐과 일어남은(其廢起也), 이것은(此) 또(又) 그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非其所以也). 다스림은(有治) 사람에게 달렸다(在人). 만물을 잊고(忘乎物), 하늘을 잊고(忘乎天), 그 이름이(其名) 자기를 잊는 것이 된다(爲忘己). 자기를 잊는 사람을(忘己之人), 이것을(是之) 하늘에 들어갔다고 한다(謂入於天).”

 

* 胥易技係: 胥는 胥吏의 胥로 하급 관리를 뜻하며 易는 다스린다는 뜻으로 雜役의 뜻이다. 技係는 기술에 얽매인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기술자의 잔재주를 의미한다.

* 執狸之狗成思(來田) 猿狙之便 自山林來: 吳汝綸, 奚侗, 章太炎 등은 모두 〈應帝王〉편에 근거하여 成思는 來田의 잘못이라고 했는데 타당한 견해이다.

* 此又非其所以也: 所以의 以는 爲와 같다. 郭象은 用이라 했고, 阮毓崧은 爲와 같다고 했는데 후자가 옳다. 《論語》 〈爲政〉에 “그가 하는 것을 보며 그가 말미암는 까닭을 살피며 편안해하는지를 살핀다[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라고 한 데서도 以가 爲의 뜻으로 쓰인 용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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