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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 7-4] 유어무유(遊於無有) / 명왕의 다스림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노닌다

by चक्रम् 202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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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子居見老聃曰: "有人於此, 嚮疾強梁, 物徹疏明, 學道不倦. 如是者, 可比明王乎?"(유인어차 향질강량 물철소명 학도불권 여시자 가비명왕호)

양자거가(陽子居) 노담을 만나 말하길(見老聃曰): "여기(於此) 어떤 사람이 있는데(有人), 메아리처럼 빠르고(嚮疾) 강인하며(強梁), 만물을 잘 꿰뚫고(物徹) 총명하며(疏明), 도를 배우는 것에(學道) 게으르지 않습니다(不倦). 이와 같은 사람이라면(如是者), 명왕에(明王) 견줄 수 있을까요(可比乎)?"라고 했다.

 

* 物徹疏明: 徹은 通과 같이 투철하게 안다는 뜻이고, 疏明은 聰明과 같다. 따라서 物徹疏明은 만물의 이치를 잘 꿰뚫고 만사를 분명히 안다는 뜻이다.

 

老聃曰: "是於聖人也, 胥易技係, 勞形怵心者也.(시어성인야 서이기계 노형출심자야) 且也虎豹之文來田, 猿狙之便·執嫠之狗來藉.(차야호표지문래전 원저지편집리지구래적) 如是者, 可比明王乎?"(여시자 가비명왕호)

노담이 말하길(老聃曰): "이것은(是) 성인에 대하여서라면(於聖人也), 잡일을 다스리고(胥易) 기술에 얽매여서(技係), 몸을 수고롭게 하고(勞形) 마음을 근심스럽게 하는(怵) 사람이다(者也). 또한(且也) 호랑이와 표범의 무늬는(虎豹之文) 사냥꾼을 불러들이고(來田), 원숭이의 민첩함과(猿狙之便) 살쾡이를 잡는 개의 재주는(執嫠之狗) 우리를 불러들인다(來藉). 이와 같은 사람이란(如是者), 명왕에 견줄 수 있겠는가(可比明王乎)?"라고 했다.

 

* 胥易(이)技係: 胥易는 胥易之徒로 잡일이나 담당하는 무리라는 뜻이며, 易는 다스리다, 담당하다의 뜻이다. 技係는 기술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 虎豹之文來田: 文은 가죽무늬의 아름다움, 來는 招來하다 또는 불러들인다는 뜻이고, 田은 사냥[獵]으로 來田은 사냥당하는 재앙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陽子居蹴然曰: "敢問明王之治."(감문명왕지치)

양자거가(陽子居) 놀라서 얼굴빛을 바꾸며 말하길(蹴然曰): "감히(敢) 명왕의 다스림을 묻습니다(問明王之治)."라고 했다.

 

老聃曰: "明王之治, 功蓋天下而似不自己, 化貸萬物而民弗恃, 有莫舉名, 使物自喜, 立乎不測, 而遊於無有者也."(명왕지치 공개천하이사부자기 화대만물이민불시 유막거명 사물자희 입호불측 이유어무유자야)

노담이 말하길(老聃曰): "명왕의 다스림은(明王之治), 공이(功) 천하를 덮지만(蓋天下而) 자기가 하지 않은 것처럼 여기고(似不自己), 교화가(化) 만물에 베풀어져도(貸萬物而) 백성이 느끼지 못하고(民弗恃), 누구도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이 있지 않고(有莫舉名), 만물로 하여금(使物) 스스로 즐거워하도록 하고(自喜), 헤아릴 수 없는 곳에 서서(立乎不測, 而) 있음이 없는 곳에서(於無有) 노니는 것이다(者也)."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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