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桑戶·孟子反·子琴張三人相與友, 曰: "孰能相與於無相與, 相爲於無相爲? 孰能登天遊霧, 撓挑無極, 相忘以生, 無所終窮?"
자상호와 맹자반, 자금장(子桑戶·孟子反·子琴張) 세 사람이(三人) 서로(相) 함께 사귀면서(與友), 말하길(曰): "누가(孰) 서로 사귀는 것 없이(於無相與) 함께할 수 있으며(能相與), 서로 위하는 것 없이(於無相爲) 서로 위할 수 있는가(相爲)? 누가(孰) 하늘에 올라(能登天) 운무에서 노닐고(遊霧), 끝없는 세계를(無極) 이리저리 돌아다니며(撓挑), 서로(相) 삶을 잊고(忘以生), 끝나고 다하는 것이 없도록 할 수 있는가(無所終窮)?"라고 했다.
* 相與於無相與 相爲於無相爲: 相與는 서로 사귐이고 無相與는 서로 사귐이 없는 상태. 곧 서로 사귐이 없는 가운데에서 서로 사귄다는 뜻으로,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사귀는 세속적인 교제를 배제한 상태,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서로 사귐을 뜻한다. 相爲於無相爲도 같은 맥락. 爲는 위해줌. 곧 도와주다는 뜻이다.
* 撓(효)挑無極: 撓挑는 ‘이리저리 돌아다닌다[宛轉]’는 뜻(李頤)으로 자유롭게 움직임을 뜻한다. 無極은 한없이 넓은 세계. 역시 道의 세계를 뜻한다.
三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友. 莫然有閒, 而子桑戶死, 未葬. 孔子聞之, 使子貢往侍事焉. 或編曲, 或鼓琴, 相和而歌曰: "嗟來桑戶乎! 嗟來桑戶乎! 而已反其真, 而我猶爲人猗!"
세 사람이(三人) 서로 바라보며(相視而) 웃고(笑), 무엇도(莫)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어(逆於心), 마침내(遂) 서로 벗이 되었다(相與友). 아무 일 없이(莫然) 잠깐 지나서(有閒, 而) 자상호가 죽고(子桑戶死),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未葬). 공자가 이것을 듣고(孔子聞之), 자공을 보내(使子貢) 가서(往) 일을 돕도록 했다(侍事焉). 어떤 사람은(或) 편곡하고(編曲), 어떤 사람은(或) 거문고를 타며(鼓琴), 서로 어울려(相和而) 노래하며 말하길(歌曰): "아(嗟來) 자상호여(桑戶乎)! 아 자상호여(嗟來桑戶乎)! 끝내(而已) 그 참된 것으로 돌아갔는데(反其真, 而) 우리는(我) 여전히(猶) 사람이로구나(爲人猗)!"라고 했다.
* 莫然有閒: 莫然은 漠然 또는 嗼然과 같다(王叔岷). 소리 없이 조용한 모양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有閒은 잠깐의 시간이 지난 것을 말한다.
* 嗟來: 嗟乎와 같다. 來는 어조사로 《莊子》에는 來자가 어조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子貢趨而進曰: "敢問臨尸而歌, 禮乎?"
자공이 달려가(子貢趨而) 나아가 말하길(進曰): "감히 묻건대(敢問) 시체를 대하고서(臨尸而) 노래하는 것이(歌), 예인가요(禮乎)?"라고 했다.
二人相視而笑, 曰: "是惡知禮意!"
두 사람이(二人) 서로 쳐다보고(相視而) 웃으며 말하길(笑, 曰): "이 사람이(是) 어찌(惡) 예의 뜻을 알겠는가(知禮意)!"라고 했다.
子貢反, 以告孔子曰: "彼何人者邪? 修行無有, 而外其形骸, 臨尸而歌, 顏色不變, 無以命之. 彼何人者邪?"
자공이 돌아가(子貢反), 이것을(以) 공자에게 고하여 말하길(告孔子曰): "저들은(彼) 어떤 사람들인가요(何人者邪)? 덕행을 닦는 것도 있지 않고(修行無有, 而) 그 육체를(其形骸) 도외시하고(外), 시신을 대하여(臨尸而) 노래하고(歌), 안색이 변하지 않고(顏色不變),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無以命之). 저들은(彼) 어떤 사람들인가요(何人者邪)?"라고 했다.
* 修行無有: 無有修行의 도치형. 예법에 맞는 행동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孔子曰: "彼遊方之外者也, 而丘游方之內者也. 外內不相及, 而丘使女往弔之, 丘則陋矣. 彼方且與造物者爲人, 而遊乎天地之一氣. 彼以生爲附贅縣疣, 以死爲決𤴯潰癰. 夫若然者, 又惡知死生先後之所在! 假於異物, 託於同體, 忘其肝膽, 遺其耳目, 反覆終始, 不知端倪, 芒然彷徨乎塵垢之外, 逍遙乎無爲之業. 彼又惡能憒憒然爲世俗之禮, 以觀眾人之耳目哉!"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저들은(彼) 세상 밖에서(方之外) 노니는 사람들이고(遊者也, 而) 나는(丘) 세상 안에서 노니는 사람이다(游方之內者也). 안과 밖은(外內) 서로 미치지 못하는 것인데(不相及, 而) 내가(丘) 너로 하여금(使女) 가서 조문하도록 했으니(往弔之), 내가(丘則) 생각이 얕았다(陋矣). 저들은(彼) 바야흐로(方且) 조물자와(與造物者) 벗이 되어(爲人, 而) 천지의 일기에서(乎天地之一氣) 노닌다(遊). 저들은(彼) 삶을(以生) 붙어 있는 혹이나 사마귀로 여기고(爲附贅縣疣), 죽음을(以死) 종기가 터지는 것쯤으로 여긴다(爲決𤴯潰癰).
그런 사람들이(夫若然者), 또(又) 어찌(惡) 삶과 죽음, 선후가(死生先後之) 있는 곳을(所在) 알려고 하겠는가(知)! 다른 사물을(於異物) 빌려서(假), 한 몸에(於同體) 의탁한 것으로 여기고(託), 그 간과 담을 잊고(忘其肝膽), 그 눈과 귀를 버리고(遺其耳目), 시작과 끝을 반복하여(反覆終始),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고(不知端倪), 무심하게(芒然) 먼지와 티끌 밖에서(乎塵垢之外) 방황하고(彷徨), 무위에서(乎無爲) 소요하는 것을(逍遙之) 업으로 삼는다(業). 저들이(彼) 또(又) 어찌(惡) 어수선하게(憒憒然) 세속의 예를 행하고(爲世俗之禮, 以) 여러 사람의 눈과 귀에(眾人之耳目) 보이도록 할 수 있겠는가(能觀哉)!"라고 했다.
* 方且與造物者爲人: 方且는 ‘바야흐로 막 ~하다’의 뜻이고 人은 벗이다. 爲人에 대해서 王引之는 “爲偶와 같다 [猶爲偶].”라고 풀이했고, 林希逸도 같은 견해다.
* 端倪(단예): 일의 시작과 끝.
* 彷徨(방황): 삶의 분명(分明)한 목표(目標)를 정(定)하지 못하고 마음의 갈등(葛藤)을 겪거나 갈팡질팡하는 것.
* 憒憒(궤궤)→憒亂(궤란): 마음이 어수선함.
子貢曰: "然則夫子何方之依?"(자공왈 연즉부자하방지의)
자공이 말하길(子貢曰): "그렇다면(然則) 선생님은(夫子) 어떤 방도를(何方之) 의지하겠습니까(依)?"라고 했다.
孔子曰: "丘, 天之戮民也. 雖然, 吾與汝共之."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나는(丘), 하늘의(天之) 벌을 받은 사람이다(戮民也). 비록 그렇지만(雖然), 나는(吾) 너와 함께(與汝) 그것을 같이하겠다(共之)."라고 했다.
* 雖然 吾與汝共之: 하늘로부터 형륙을 당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子貢과 함께 方外의 세계를 추구하겠다는 뜻. 林雲銘이 “方內의 세계에서 점차 方外의 세계로 나아가 노닐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謂欲從方內而漸遊於方外].”라고 풀이한 견해가 적절하다.
子貢曰: "敢問其方."(자공왈 감문기방)
자공이 말하길(子貢曰): "감히(敢) 그 방법을 묻습니다(問其方)."라고 했다.
孔子曰: "魚相造乎水, 人相造乎道. 相造乎水者, 穿池而養給; 相造乎道者, 無事而生定. 故曰: 魚相忘乎江湖, 人相忘乎道術."
공자가 말하길(孔子曰): "물고기는(魚) 함께(相) 물로 나아가고(造乎水), 사람은(人) 함께(相) 도로 나아간다(造乎道). 함께 물로 나아가는 것은(相造乎水者), 연못을 파주면(穿池而) 살아가기 넉넉하고(養給); 함께 도로 나아가는 것은(相造乎道者), 일이 없으면(無事而) 삶이 안정된다(生定).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물고기는(魚) 강과 호수에서(乎江湖) 서로 잊고(相忘), 사람은(人) 도술에서 서로 잊는다(相忘乎道術)."라고 했다.
* 魚相造乎水 人相造乎道: 造는 《孟子》 〈公孫丑 下〉의 ‘趨造於朝’의 造와 같이 나아가다의 뜻이다. 陸德明과 成玄英은 모두 詣(지, 가다)로 풀이했고, 楊樹達은 就로 풀이했다.
* 穿池而養給: 給은 足과 같은 뜻으로 《孟子》 〈梁惠王 下〉의 ‘秋省斂而助不給’의 給과 같이 넉넉하다, 충분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而는 則과 같다.
子貢曰: "敢問畸人."(자공왈 감문기인)
자공이 말하길(子貢曰): "감히(敢) 기인에 대해 묻습니다(問畸人)."라고 했다.
曰: "畸人者, 畸於人而侔於天. 故曰: 天之小人, 人之君子; 人之君子, 天之小人也."
말하길(曰): "기인은(畸人者),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만(畸於人而) 하늘에 일치한다(侔於天). 그러므로 말하길(故曰): 하늘의 소인은(天之小人), 사람의 군자이고(人之君子); 사람의 군자는(人之君子), 하늘의 소인이다(天之小人也)."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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