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유 첫 부분에서 장자가 강조한 이름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명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이 이야기에서 혜시는 고정관념에 매인 사람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조롱박은 속을 파내고 물을 담거나 반으로 갈라 바가지로 쓰는 열매다.
하지만 혜시가 심은 조롱박은 보통의 조롱박이 아니어서 문제였다. 이런 고정관념에 매여버리니 다섯 섬이나 크기나 되는 거대한 조롱박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크면 그걸 타고 뱃놀이를 하면 될 것인데, 어찌 혜시는 그걸 몰랐을까?
惠子謂莊子曰: "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成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自擧也. 剖之以爲瓢, 則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
헤자가(惠子) 장자에게 일러 말하길(謂莊子曰): "위왕이(魏王) 큰 표주박 씨를(大瓠之種) 나에게 주었는데(貽我), 내가(我) 그것을 심어서(樹之) 열매가 열렸는데(成而) 열매가 다섯 섬 크기나 되고(實五石, 以) 마실 물을 채웠더니(盛水漿), 그 무거움이(其堅) 혼자 들 수 없을 정도다(不能自擧也). 그것을 잘라서(剖之以) 바가지를 만들었는데(爲瓢, 則) 얕고 평평해서(瓠落) 쓸 곳이 없었다(無所容). 공연히 크지 않은 것은(不呺然大) 아니지만(非也), 나는(吾) 그것이 쓸 곳이 없기 때문에(爲其無用而) 그것을 쪼개버렸다(掊之)."라고 했다.
* 惠子(혜자): 姓은 惠, 이름은 施, 宋나라 사람으로 梁나라의 재상이 된 적도 있다. 戰國 中期에 활약한 名家의 대표적인 思想家이자 政治家이다. 그의 사상이 초기 道家哲學의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莊子》에 보이는 장자와의 문답의 대부분은 寓言이지 역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장자와는 친구 관계로 나오는데, 어째 나올 때마다 장주에게 논박당하는 역할을 한다.
* 我樹之成而實五石 : ‘我樹之 成而實五石’으로 읽을 수도 있고, ‘我樹之成 而實五石’으로 읽을 수도 있다. 현토본과 朴世堂은 모두 後者로 읽었다. 成은 크게 자란다는 뜻도 가능하나 여기서는 열매를 맺다는 뜻으로 보았다.
* 水漿(수장): 마실 물. 漿은 마시는 물의 총칭이다.
*瓠(확)落(락): 瓠落은 平淺, 곧 얕고 평평하다는 뜻(成玄英)이다.
* 呺(효)然: 呺然은 공연히 큰 모습[虛大貌], 헛배 부른 모양을 말한다.
* 爲其無用而掊之: 爲는 때문에, 掊는 부숴 버리다의 뜻이다.
莊子曰: "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爲事. 客聞之, 請買其方以百金. 聚族而謀曰: '我世世爲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鬻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難, 吳王使之將, 冬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장자가 말하길(莊子曰): "그대는(夫子) 진솔로(固) 큰 것을 쓰는 데 둔하구나(拙於用大矣). 송나라 사람 중에(宋人) 有善손이 트지 않도록 만드는 약을(爲不龜手之藥)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有善者), 대대로(世世以) 솜을 세탁하는 일을(洴澼絖) 업으로 삼았다(爲事). 나그네가(客) 그것을 듣고(聞之), 그 방법을(其方) 백금으로(以百金) 사겠다고 청했다(請買). 가족이 모여(聚族而) 의논하여 말하길(謀曰): '우리가(我) 대대로(世世) 세탁업을 했는데(爲洴澼絖), <수입은> 몇 금에 지나지 않는다(不過數金). 지금(今) 하루아침에(一朝而) 기예를 백금으로 팔 수 있으니(鬻技百金), 그에게 줘 버리자(請與之).'라고 했다. 나그네가 그것을 얻어서(客得之, 以) 오왕에게 설명했다(說吳王). 월나라와(越) 싸움이 있자(有難), 오왕이(吳王) 그를 장수로 삼아서(使之將), 겨울에(冬) 월나라와 더불어(與越人) 수전을 치르고(水戰), 월나라를 크게 무찌르니(大敗越人), 땅을 찢어(裂地而) 그를 봉했다(封之).
* 善爲不龜手之藥: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듦. 龜은 손이 튼다, 금이 간다는 뜻이다.
能不龜手, 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用? 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손을 금 가지 않게 하는 것은(能不龜手), 한 가지다(一也). 누구는(或) 그것으로 분봉을 받고(以封), 누구는(或) 세탁업을 면하지 못했다면(不免於洴澼絖, 則) 쓰는 곳이 달라서이다(所用之異也). 지금 그대에게(今子) 다섯 섬 크기의 박이 있다면(有五石之瓠), 어찌(何) 큰 <술통 모양의> 배를 만들어서(以爲大樽而) 강과 호수에 떠다닐 것을(浮乎江湖) 생각하지 않고(不慮, 而) 그 평평한 바가지가(其瓠落) 쓸 곳이 없다고(無所用) 걱정하는가(憂)? 그렇다면(則) 그대는(夫子) 오히려(猶) 쑥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有蓬之心也夫)!"
*蓬之心: 꼬불꼬불한 쑥대 같은 마음. 向秀는 “蓬은 짧아서 곧게 펴지 못함이니 굽은 사람을 말함이다 [蓬者 短不暢 曲士之謂也].”라고 풀이했다.
'장자(莊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2-1] 나를 잊어버리는 경지 [망아지경(忘我之境)과 고목사회(枯木死灰)] (0) | 2023.12.14 |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1-5] 쓸모 없는 나무의 쓸모 [대이무용(大而無用)] (0) | 2023.12.13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1-3] 막고야산에 신인이 산다고 말하는 미치광이가 있다 [막고야산(藐姑射山)] (0) | 2023.12.11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1-2] 이름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언서지망(偃鼠之望)] (0) | 2023.12.11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1-1]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산다[북명유어(北冥有魚)] (0) | 202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