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자(莊子)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1-3] 막고야산에 신인이 산다고 말하는 미치광이가 있다 [막고야산(藐姑射山)]

by चक्रम् 2023. 12. 11.
반응형

견오가 접여에게 들은 황당한 이야기에 대해 연숙에게 물어보는 내용이다. 접여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막고야산에 사는 신인들은 먹지도 않고 구름과 용을 타고 사해 밖에서 노닌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세상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세속적인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입니다. 견오가 연숙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소연합니다.

 

연숙은 그런 견오를 나무랍니다. 수준 높은 이야기를 해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귀머거리나 장님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은 정신적 장애인일 것입니다. 황당한 이야기를 많이 한 접여를 '초나라의 미치광이'라고 불렀지만, 접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는 미치광이일지도 모릅니다.

 

肩吾問於連叔曰: "吾聞言於接輿, 大而無當, 往而不返. 吾驚怖其言, 猶河漢而無極也. 大有逕庭, 不近人情焉."

連叔曰: 其言謂何哉?"

견오가(肩吾) 연숙에게 물어 말하길(問於連叔曰): "내가(吾) 접여에게(於接輿) 말을 들었는데(聞言), 크기만 하고(大而) 마땅함이 없고(無當), 가기만 하고(往而) 돌아오지 않는다(不返). 내가(吾) 그 말에 놀랍고 두려웠는데(驚怖其言), 은하수와 같아서(猶河漢而) 끝이 없었다(無極也). 매우(大)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있어(有逕庭), 사람의 정리와 가깝지 않았다(不近人情焉)."라고 했다.  연숙이 말하길(連叔曰): 그의 이야기가(其言) 무엇을 말하던가(謂何哉)?"

 

* 接輿(접여): 孔子와 동시대의 楚나라의 은자(隱者). 여기서는 가공의 인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論語》〈微子〉편에는 공자의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을 비판한 접여(接輿)의 말이 보인다. 접여(接輿)는 《논어》 본문에 ‘초광접여(楚狂接輿, 초나라의 미치광이)’로 나오기 때문에 흔히 초광접여(楚狂接輿) 또는 광접여(狂接輿)로 불린다.

* 河漢(하한): 1. 중국(中國)의 황하(黃河), 2. 남북(南北)으로 길게 보이는 은하계(銀河系)를 강으로 보고 하는 말.

* 逕庭(경정): 정도(程度)의 매우 심한 차이(差異).

* 不近人情焉: 인정과 가깝지 않음. 곧 사람의 상식[人情]과 어긋난다는 뜻.

 

曰: "藐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飮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其神凝, 使物不疵癘而年穀熟.󰡕 吾以是狂而不信也."

말하기를(曰): "막고야산에(藐姑射之山), 신인이 살고 있는데(有神人居焉), 피부가(肌膚) 얼음이나 눈 같고(若氷雪), 가냘프고 아리따운 몸이(綽約) 처녀와 같다(若處子). 오곡을 먹지 않고(不食五穀), 바람을 들이켜고(吸風) 이슬을 마신다(飮露). 구름을 타고(乘雲氣), 비룡을 몰아서(御飛龍, 而) 사해 바깥에서(乎四海之外) 노닌다(遊). 그 신묘한 정기가(其神) 뭉쳐서(凝), 만물로 하여금(使物) 병들지 않게 하고(不疵癘而) 그 해의 곡식이 잘 익도록 한다(年穀熟). 내가(吾) 이 때문에(以是) 미친 소리로 여겨서(狂而) 믿지 않는다(不信也)."라고 했다.

 

* 綽約(작약): 몸이 가냘프고 아리따움.

* 不食五穀: 오곡을 먹지 않음. 오곡(五穀)은 五穀百果의 오곡으로 《孟子》〈滕文公 上〉 허행장(許行章)의 조기(趙岐) 주(註)에 의하면 벼[稻], 찰기장[黍], 메기장[稷], 보리[麥], 콩[菽]의 다섯 가지 곡식 또는 곡식의 총칭이다.

* 年穀熟: 해마다의 곡식이 풍성하게 영글도록 한다. 해마다 곡식이 풍성하게 익도록 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고(年이 부사로 쓰인 경우), 해마다의, 또는 그 해의 곡식이 잘 익도록 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年을 형용사로 읽음). 그런데 年을 형용사로 읽는 年穀이란 용어는 戰國時代 이래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連叔曰: 然! 瞽者無以與文章之觀, 聾者無以與乎鐘鼓之聲.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 是其言也, 猶時女也. 之人也, 之德也, 將旁礴萬物以爲一, 世蘄乎亂, 孰弊弊焉以天下爲事! 之人也, 物莫之傷, 大浸稽天而不溺, 大旱金石流, 土山焦而不熱. 是其塵垢粃糠, 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分分然以物爲事."

연숙이 말하길(連叔曰): 그런가(然)! 눈먼 사람은(瞽者) 무늬와 빛깔을 보는 것에(文章之觀) 참여할 수 없고(無以與), 귀먹은 사람은(聾者) 종소리와 북소리를 듣는 것에(乎鐘鼓之聲) 참여할 수 없다( 無以與). 어찌(豈) 오직(唯) 사람의 몸에만(形骸) 귀머거리와 장님이 있겠는가(有聾盲哉)? 무릇(夫) 지혜에도(知) 또한(亦) 그런 것이 있다(有之). 이 말은(是其言也), 오히려(猶) 너에게 딱 맞는 것이다(時女也). 이런 사람이(之人也), 이런 덕이(之德也), 장차(將) 만물을 뒤섞어(旁礴萬物) 하나로 하니(以爲一), 세상(사람)은(世) 다스려 주기를 바라지만(蘄乎亂), 누가(孰) 애써 힘들여가며(弊弊焉以) 천하 다스리기를(天下爲) 일삼겠는가(事)! 그런 사람은(之人也), 만물이(物) 무엇도 손상시키지 못하니(莫之傷), 큰 홍수가 나서(大浸) 하늘에 이르더라도(稽天而) 물에 잠기지 않고(不溺), 크게 가물어서(大旱) 쇠와 금이 <녹아> 흐르고(金石流), 흙과 산이 타더라도(土山焦而) 뜨거워지지 않는다(不熱). 이 사람은(是其) 먼지나 때, 쭉정이나 쌀겨로도(塵垢粃糠), 장차(將) 오히려(猶) 요순과 같은 사람을 길러낼 수 있으니(陶鑄堯舜者也), 누가(孰) 기꺼이(肯) 분연히(分分然) 세상일로(以物) 일삼으려 하겠는가(爲事)."

 

* 與乎文章之觀: 무늬와 빛깔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음. 與는 참여하다는 뜻(曹受坤). 文章之觀은 무늬와 빛깔의 아름다운 볼거리라는 뜻이다.

* 形骸(형해): 사람의 몸과 몸을 이룬 뼈.

* 是其言也猶時女也: 이 말은 지금의 그대에게 딱 들어맞는 말임. 是其言也는 ‘이(또는 그) 말은’으로 번역되는데 그 말을 누구의 말, 어떤 말로 보느냐에 따라 풀이가 달라진다.

* 旁礴萬物以爲一旁礡을 司馬彪는 混同으로 보고 ‘혼합한다’, ‘반죽한다’는 뜻이라 했다. 以爲一은 하나로 한다, 하나로 합한다는 뜻인데 以爲一에서 句를 끊지 않고 아래의 世자까지 붙여 읽어 ‘一世蘄乎亂’에서 絶句하는 견해(林希逸, 朴世堂, 王先謙 등)도 있다.

* 弊弊焉: 지친 모습. 애씀, 심신을 피로하게 하여 일을 함(安東林). 째째한 모습으로 풀이한 견해(李基東)도 있다.

* 陶鑄(도주): 도공(陶工)이 옹기(甕器)를 만들고 단공(鍛工)이 금속(金屬)을 녹여 부어 그릇을 만든다.」는 뜻으로, 인재(人材)를 양성(養成)함을 이르는 말.

 

宋人資章甫而適諸越, 越人斷髮文身, 無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邈姑射之山, 汾水之陽, 窅然喪其天下焉.

송나라 사람이(宋人) 장보관을 준비해서 <팔려고>(資章甫而) 월나라에 갔는데(適諸越), 월나라 사람들이(越人) 머리를 자르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斷髮文身), 그것을 쓸 곳이 없었다(無所用之). 요임금이(堯)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다(治天下之民), 천하의 정치가 평안해지자(平海內之政), 가서(往) 막고야산에서(邈姑射之山) 네 스승을 만났다가(見四子), 분수의 북쪽에서(汾水之陽), 멍하니(窅然) 자기의 천하를 잊었다(喪其天下焉).

 

* 資章甫: 章甫를 장만함. 李頤는 資를 貨로 풀이했는데, 장사 밑천으로 장만하다의 뜻이다. 章甫는 역시 李頤가 은나라 관[殷冠]으로 풀이했는데, 殷의 후예인 宋人이 조상 전래의 章甫라는 갓을 존중한 데서 성립된 說話이다.

* 窅(요)然喪其天下 : 멍하게 얼이 빠져 천하를 잊어버림. 窅는 실의에 빠져 멍하다의 뜻이다. 《莊子》에는 窅然이 세 차례 보인다. 첫째는 이 부분으로 실의에 빠져 멍하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知北遊〉편의 ‘大道窅然難言哉’로 이때의 窅然은 심오하고 어두운 모양이고, 또 하나는 역시 〈知北遊〉편의 ‘窅然空然’으로 이때의 窅然은 심오한 모양, 空然은 허무한 모양이다. 喪은 忘과 같은 뜻이다.

반응형